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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책 리뷰 서평 감상

[번역이 왜 이래?] TOP 10 단편소설. #부실한 번역이 아쉬운 책 #영어단편소설집 #개정판나와라!얍 [영어학습서][책리뷰]

by 녕작가 2020. 12. 4.

오늘 리뷰할 책은 영어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토플, 편입 영어와 공무원 영어 단어를 외우는 데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소설 속의 맥락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영어 원문만 있는 건 아니고, 왼쪽엔 원서가 오른쪽엔 번역이 달려있다. 한 때 <왕좌의 게임>도 원서로 섭렵하면서 영어 좀 한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내가 한글 번역이 달린 걸 산다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1 년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를 원서로 읽는 게 버거웠던 충격 경험 요법을 당한 터였다. 애꿎은 자존심은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대충 훑어봤을 땐 참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했다. 영어 문학책을 읽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작가에 따라 어순을 뒤죽박죽 섞어놓는 경우도 많고 생략도 많아서 아는 단어가 많아도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제법 있다. 그런데, 옆에 해설이 달려 있으면 혹여나 해석이 까다로운 문장이 있을 때 도움받기 쉬울 것 같았다. 심지어 원어민이 읽어주는 MP3도 준다고 한다(자료를 신청하긴 했는데 아직 못받았다. 빠르면 1주, 늦으면 1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냉큼 책을 샀다.

 

사실 책을 산 건 11월 초. 산지 꽤 지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대략 500페이지 분량. 이 리뷰를 쓰는 시점은 193페이지까지 읽었다. 다 읽고 책 리뷰를 쓰려했으나, 너무 리뷰하고 싶은 구석이 많아 참지 못하고 리뷰를 작성한다. 

완독 후에 추가할 내용이 있다면 이 포스팅에 덧붙이겠다.

 

이 책의 구성을 먼저 살펴보면,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 된 소설은  아래와 같다. 

 

1. O. Henry의 After 20 years. (오 헨리 : 20년 후)
2. Sherwood Anderson : The Egg (셔우드 앤더슨 : 달걀)
3. Jack London : To build a Fire  (잭 런던 : 불 지피기)
4. William Somerset Maugham : Red (윌리엄 서머셋 모옴 : 레드)
5. Edgar Allan Poe : The Tell-Tale Heart (애드거 앨런 포 : 고자질쟁이 심장)
6. Evelyn Waugh : Mr. Loveday's Little Outing (에블린 워 : 러브데이씨의 짧은 외출)
7. William Wymark Jacobs : The Monkey's Paw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 원숭이 손)
8. F.Scott Fitzgerald : The Diamond as Big as the Ritz (F. 스콜 피츠제럴드 :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9. Thomas Hardy : To Please His Wife (토마스 하디 : 아내를 위해)
10. Virginia Woolf : KEw Gardens(버지니아 울프 : 큐 국립 식물원)

이 책의 저자(엮은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의 말에 따르면, 소설의 난이도 순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1편은 확실히 다른 편에 비해 쉬웠던 것 같긴 하다. 나는 현재 4편인 <레드>까지 읽었다. 이 소설집 안의 모든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은 다 재밌었다. 생각할 것도 많았다. 잭 런던의 <불 지피기>를 읽고 나서는, 괜히 추운 날에 밖에 나가면 지나치게 자주 소설 주인공이 떠오르곤 할 정도였다. 추위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랄까. 영어 공부용이 아니라면 소설 자체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만,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이 책을 좋게만 볼 순 없다. 이 책은 엄연히 영어 공부를 하려는 사람을 주 타깃으로 잡은 책이다.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굳이 오른쪽에 한글 번역이 딸린 책을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원서를 사면 된다. 원서가 더 싸기도 하다. 이 책은 '주타겟 독자층(영어학습자)의 구매 목적을 충족해줄 만한가? 막연히 긍정적인 대답을 줄 수만은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새로운 책을 시작할 때마다, 페이지별로 단어 몇개를 선별해 놓는다. 이 부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미리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소설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로 막히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본문이다

 

 

왼쪽의 영어 문장 말고, 오른쪽의 번역 문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게 돈 받고 파는 책에 실린 번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반적인 번역이 엉망이다. 구절구절을 지나치게 잘게 끊어서 직역했는데, 직역의 퀄리티도 그리 좋지 않다. 한글 번역 부분을 읽고 줄거리가 제대로 이해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혹시 고등학생을 시켜서 한쪽씩 번역시킨 건 아닐까? 싶은 번역 퀄리티였다. 백 번 양보해도 영어 교육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번역이라고 달아놓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아무 문장이나 읽어봐도 못 마땅한 번역 투성이었다. 방금 내가 펼친 페이지에서 읽은 걸 보여주겠다. 진심으로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은 문장이다. 바로 아래에는 책의 번역을 옮겨 놓았다.

He was boarding with a half-caste trader who had a store a couple of miles along the coast at the edge of a native village; 
그는 타고 있었다/ 혼혈인인 상인과/그는 가게를 가졌다/해변을 따라 2마일쯤 떨어진/마을의 가장자리에;

우선 구문을 지나치게 잘게 쪼갰다는 느낌이 든다. 혹은 이 정도가지 구문을 쪼개진 않았으면 했다. 거기다 내 개인적으로는 문장  전체를 매끄럽게 번역하길 바랐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고 넘어가더라도, 누가 '가게를 가졌다'라고 표현할까? 차라리 '소유하다'나 '있다'라는 표현이 낫지 않았을까? 

이 정도 번역은 양호한 수준이다. 

 

It was not till he had seen her two or three times that he induced her to speak. 
그녀를 본지 두세 번까지는 할 수 없었다/그녀가 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나치게 직역에 집착한 문장이다. 이걸 직역이라 부를 수 있다면. not till은 '~이어서야' 혹은 '~한 뒤에야'로 해석해야 좀 더 읽기에 부드럽다. 저렇게 잘라서 해석해 놓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와 닿지 않는다. 영어 공부를 하는 데에도 도움되는 번역은 아니다. 차라리,  '그가 두세 번 정도 그녀를 본 후에야'로 해석해야 나을 것이다. (나는 매끄러운 걸 좋아해서 의역을 선호하는데, 나라면 '그가 두세 번 정도 그녀를 찾아간 후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로 할 것 같다. 물론 이건 호불호의 영역. 내가 까고 싶은 건 직역의 퀄리티다)

 

 

물론 내가 번역을 볼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 번씩 꽤나 까다로운 구문이 나오곤 했는데, 그 경우에 번역을 보면 어김없이 엉망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번역을 보기 위해 오른쪽 페이지를 볼 일은 없었다. 차라리 내가 번역하는게 나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오른쪽 페이지기 주는 이점은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 단어가 뭔지 확인하기 편했다는 것 뿐이었다. 매끄러운 번역을 할 공간이 부족해서였다면, 차라리 핵심적인 일부분만 해석을 하고, 충분한 설명을 달아놓는 게 더 좋았을 거다. 혹은 번역은 포기하고 오른쪽 페이지는 단어 뜻만 싣는 게 훨씬 더 보기 깔끔했을 것이다. 

 

저 수준의 번역을 바라고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누군가는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한텐 유용할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글쎄, 저 정도 번역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원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오히려 짜증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예 책읽기를 포기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토익, 토플, 텝스 문제집이 차라리 더 낫다. 어느 문제집을 봐도 저런 낮은 수준의 번역보다는 나을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해석이 엉망이라 소용이없다면, 잘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살 필요가 없다. 원서를 읽으면 되니까. E-book으로 사면 모르는 단어는 눌러보기만 해도 알아서 뜻이 뜬다. 영영, 영한번역 원하는 걸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mp3인데, 사실 원서를 제공하는 도서관 중에는 오디오북이 많다. 그러니, 이마저도 큰 장점은 아닌 셈.

 

나는 궁금하다./누군가가 그것을 산다/책은 엉망인 수준의 번역이 있다/그럼에도 돈을 주고./기꺼이/그리고 만족하는 것이다/책을 읽는다.

 

 

이 책의 저자가 처음 집필했던 책 3권이 망했다고 했는데, 이유가 수긍이 가는 책이라 할 만했다. 

정말 좋은 컨셉이고, 수록 작품도 괜찮은 책이다. 작품 자체가 재미있어서 읽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저 발번역이 정말 좋은 영어 학습서가 될 뻔한 책을 망쳤다. 그래서 너무 아쉽다. 저자는 영어 강사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에 혹시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부디 번역 부분을 매끄럽고 고쳐서 나왔으면 한다. 아니면 아예 빼버리던지. 

 

 

 

 

 

처음으로 책을 미친듯이 까내린 포스팅을 써버렸네요. 쓰고 나니 작가에게 미안해집니다.

정말 좋은 책이 될뻔한 영어학습서라 아쉬운 감정이 커서 더 매질을 한 것 같습니다.

컨셉과 기획 자체는 좋기에 개정판을 기대해 봅니다.

혹시나 작가가 본다면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ps. 저자가 이 책의 리뷰를 쓰면, 숨겨진 소설을 더 준다고 했는데 이 리뷰를 쓰고 달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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