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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책 리뷰 서평 감상

[공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공간이 만든 공간_유현준

by 녕작가 2020. 11. 26.

*이 포스팅은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나는 유현준 작가의 글을 참 좋아한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책을 통해 그의 글을 처음 접하고, 유현준 작가의 팬이 되어 버렸다. 건축과 교수가 아니라 사실은 인문학이나 철학과 교수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축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작가의 책은 건축을 주제로 하지만, 통찰은 인간의 삶에까지 가 닿는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공간을 소재로 세상을 사유하는 책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그는 책을 통해 건축과 공간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았다. 작가의 건축과 공간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그의 인문의 통찰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건축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건축뿐만 아니라 인문의 흐름을 보는 통찰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번 책에서는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사고 방식의 힘을 많이 빌렸다. 거기에다 작가의 통찰을 융화시킨 것이다. 원시 문화에서부터, 동양과 서양, 그리고 이 둘의 융합, 미래의 뱡향까지 포괄하는 시선은 건축과 교수라고만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의 범위였다. 비록 이번 책에서는 한정된 사례로 다소의 논리적 비약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동양에서는 관계를 중요시해서 바둑이라는 게임이 있고, 서양에서는 체스가 있다는 식이다. 다른 전통 게임을 찾아보면 반례도 찾을 수 있고, 반론의 여지도 많은 주장이다. 그 외에도, 단지 특정 사례에서 서로의 유사점에 대해 얘기할 때는 비슷한 부분의 사진을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통찰은 모든 패턴과 정보를 다 알고 나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고대에서부터 늘 정보는 한정되었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정보 내에서만 통찰할 수 있다. 경험한 사례에서 세상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 내는 힘은 분명 배워야 할 점이었다.

 

 

그는 책의 후미에서 급변하는 미래에서 인간의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자동화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AI의 발전속도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으로 우리는 AI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에 그의 생각의 일부를 인용한다.

 

"인간 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려면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내는 눈이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인간다움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난 수백 년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가 나오면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고 인간다움도 바뀐다... 디지털과 융합해 가는 이 시대에 장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구글 이미지로 <막혀있는 계단>을 검색한 결과.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은 예술 작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계단으로의 쓰임은 없다.

그는 단지 관념과 이성의 힘만으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해체주의 건축가인 피터 아이젠만이 '새로움'에 대한관념만으로 내어놓은 건물의 실용성 없음에 대해 얘기한다. 지나치게 관념에 사로잡힌, '새로워야 한다'는 맹목적인 시각만으로 만들어진 건축이 얼마나 인간을 소외시켰는지를. 다른 분야와의 접목은 최근의 트렌드이지만, 건축의 본질과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축이 실재를 버리는 순간 건축은 건축이 아니게 된다. 올라갈 수 없는 계단이라거나, 열 수 없는 문이라면 그것은 뛰어난 예술 작품은 될 수 있을지언정 훌륭한 건축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관념은 실재를 기반해야 한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준 사고 방식을 내 분야에도 얼마든지 접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의학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 그리고 인문의 흐름. 의학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통해 예측하는 미래의 의학과 인간.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새로운 관계 형성. 의학 역시 기하학과 관계의 관점에서 동서양을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확히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의 책들은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책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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