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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이야기/일상과 생각

[내가 대학원을 그만 둔 이유] 죽도록 힘든 대학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만두어도 괜찮다."

by 녕작가 2020. 11. 29.

 

먼저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지금은 대학원생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 최고의 생명과학자를 꿈꿨다. 그것도 20대 초반이 갖기에 나름은 꽤나 구체적인 꿈과 목표도 있었다. 학부생 때부터 전공 논문들을 읽으면서, <Neuron>에 내 졸업 논문을 내보고 싶었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신경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남들 앞에서 내 꿈을 당당히 얘기하며 다닌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험을 계속할수록 내가 바라는 미래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희미해져 갔다.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가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 결과가 나를 실험하는 것 같았다. 실험 결과에 내 미래가 달렸기에 더욱 그랬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20대의 어리고 멋 모르던 자신감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져 내렸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과 근거없는 자신감은 계속되는 실험의 실패 앞에서 결코 유지될 수 없었다.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매 순간이 무서웠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 채 반복되는 실패의 무서움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멋 모르고 가졌던 나의 꿈은 한 없이 높게 느껴졌다. '내 주제에 <Neuron>이라고? 제 때 졸업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자신감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미래는 내가 아닌 지도교수의 역량과 연구 주제가 정하는 것이 되었고, 내 실험 실력은 내가 아닌 사수의 역량에 달리게 된 것이다. 나는 지도 교수가 연구 주제를 찾아주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아보겠다는 어릴 때의 포부는 한 때의 개소리가 되었고, 후배들이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세상모르는 소리로 치부했다. 만약 운이 좋아서 <Neuron>과 비슷한 수준의 저널에 저 논문을 싣더라도 문제였다. 박사 후과정을 밟더라도, 나에게 있어 나의 미래는 지도교수의 역량과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환경, 연구의 트렌드, 국내의 여건 등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되어버렸다. 나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내 미래를 걸고 끝없는 도박을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는 내 인생의 설계자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은 내 삶의 여유를 강탈해갔다. 절망감이 나를 잠식한 것이다. 

 

 

나는 패배감은 주위에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연구실의 대선배인 박사님께 대들게 되고, 그 이후 연구실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힘들어졌다. 당시 여자 친구와는 수 없이 싸웠다. 내 오랜 친구들의 안부 문자는 전부 무시해버렸다. 스스로 침잠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나는 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여자친구가 울면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날카롭게 변한 내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순간 돌이켜 봤다.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대학을 막 졸업하고 자신감에 넘쳤던 나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무엇을 하든 겁쟁이가 된 패배자에 피해의식이 가득한 싸움꾼만 남았다. 최고의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졸업이나 하면 다행이라는 간절한 타성으로 치환되었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선택해야 했다. 이 지옥을 끝까지 버텨나갈 것인지. 매 학기 우리 학교에서 자살자가 나오던 때였다. 모두 대학원생이었다. 무엇이 한국에서 최고로 똑똑한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것일까? 나는 모른다. 다만 나 역시 새벽마다 기숙사를 향하는 길에 꽤나 자주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지금 죽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지금 나에게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삼킬 수 있을 거야', '나중에 나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이런 자신에 놀라면서도 덤덤했다. 그런 내가 무서웠다.

 

결국 나는 대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순간엔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았다. 나 스스로의 유약함에 실망하기도 했다. 대학원을 그만두는 선배들을 보고 한심한 패배자라고,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웃던 나였다. 내가 그 패배자가 된 것이다. 후회하냐고? 전혀. 그때 내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망가져 갔을 거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 친구들보다 사회생활이 많이 늦어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늦는 것이 망가지는 것보다 낫다. 나는 내 삶의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무너졌던 관계들은 서서히 되찾아 갔다. 삶에서 놓쳤던 주변을 인식하게 되고, 관심 갖게 되었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유약했던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더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자신이 있다. '이랬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후회나 깨달음은 내가 아픔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왔기에 보이는 것임을 안다. 그때의 나는 아픈 것만으로 벅차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쉬울지언정 후회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한 번씩 동기들이 무슨 논문을 냈는지 확인하곤 한다. 처음 내 동기의 논문이 유명한 저널에 실렸을 때는 내 과거의 꿈이 다시 떠오며,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쯤 저런 논문을 내지 않았았을까' 하는 괜한 아쉬움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잘 냈구나' 응원할 뿐이다. 그들이 이 논문을 내기까지 겪었을 마음고생을 충분히 알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고, 그 때보다 더 성장했다. 고통은 경험이 되고 교훈이 되었다. 미래에 비슷한 패배의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전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면서 

지금 대학원에서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시 도망치면 패배자로 기억될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혹자는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포기해도 된다. 대학원 생활 그만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엔 다른 좋은 길들이 너무도 많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마라. 당신의 상처가 제일 급하다. 저절로 아물 수 있는 상처가 있고, 때로는 다 썩어 문드러져서 도려내야만 살 수 있는 상처가 있다. 스스로 돌이켜보라. 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 같진 않은지.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사형선고를 받으러 가는 길 같은가? 나 자신이 심각하게 변하고 있는가? 관계가 망쳐지고 있는가? 혹시 길을 가며 저절로 '죽음'을 떠올리진 않는가?

 

그만두어도 괜찮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다. 그 길이 당신과 안 맞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자. 그만두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도 분명 의미있는 길이니 말이다. 단지, 늦게 만개할 뿐일 것이다. 오랜 고생 끝에 성공한다면 그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두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혹은 잠깐 쉬는 것도 좋다. 고통에서 좀 떨어져보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어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좋다. 혼자서 너무 앓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죽음을 선택하진 말아줬으면 한다. 그럴 바에는 연구실에서 도망쳐라. 한때 죽음을 고민했던 나는, 지금 죽는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혹시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비밀댓글이나 쪽지를 남겨주길 바란다. 진심을 다해 성실히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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