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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책 리뷰 서평 감상

[때로는 도망칠 줄도 알아야 한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_이도우 (시공사)

by 녕작가 2020. 11. 2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완독하고 읽으시는 걸 권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올해 2월에 드라마도 제작되기도 했다. 나는 드라마는 보지 못했고, 책에서 느낀 감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사랑'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내가 이 포스팅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이 책에는 따뜻하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많다. 해원과 은섭의 연애소설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물들 각각의 삶도, 그 속에서 음미할 수 있는 점들도, 생각해볼 만한 점들도 소설 곳곳에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다. 

 

상처가 많은 해원, 다정하면서도 소탈한 은섭, 쾌활하고 눈치 빠른 장우,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명여, 해원과의 화해에 목마르고 해원의 오랜 무시에 상처받아왔던 보영...

 

나는 이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공감이 갔던 해원과 명여 이모, 그리고 보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다. 자잘한 상처가 겹겹이 쌓이고 곪아 썩어든, 혹은 가슴 한 켠을 움푹 파고든 깊은 상처가 유독 아픈 날 말이다. 그런 날이면, 마주하기 힘든 상처를 대하는 저마다의 회복 전략이 있다. 누군가는 여행이라는 방법으로, 누군가는 술이라는 수단으로 그 몹쓸 상처를 피하리라. 서른 살의 목해원은 서울에서 미술학원 입시강사를 했었다. 이상과 다른 현실에 치여, 사람에 치여 해원의 마음에도 크고 작은 많은 생채기를 쌓아 왔다. 그러다 해원은 학원 수강생이 다른 학생의 작품을 몰래 망쳐놨다는 것을 듣고 그 학생을 혼 낸 적이 있다. 다음 날 그 수강생의 부모가 물감통의 먹물을 해원의 몸에 부어버리며 해원에게 날선 비난을 퍼붓던 날, 해원의 쌓여왔던 상처가 터져 버렸다. 유독 추운 어느 겨울, 해원은 헤천으로, 이모가 운영하는 호두하우스 펜션으로 도망쳤다. 더 이상을 상처를 피해서. 

 

도망이 정말 나쁘기만 한걸까?

사실 꽤나 많은 경우, '도망'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인다. 흔히들 도망치는 사람을 보고 '비겁하다'며, 겁쟁이라며 비웃기도 한다. 어떤 문제든 피하지 않고 싸워 이기는 것이 최고라 말하는 명언과 책들도 수두룩하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명언 중에 "if you are in the hell, keep through it"이라는 말조차 있지 않은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라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껏 힘든 걸 참고 버티는 사람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며 그런 삶만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힘든 일은 버티기만 하면 괜찮아질까? 정말 도망치는 건 부끄럽고 비겁한 일이기만 한 걸까?

 

내 생각은 다르다. 해원도 아마도 다르다고 생각할 거다. 때로는 도망치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더 많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바둑으로 치자면 죽은 돌들을 포기하고 바둑판의 다른 곳에 집중할 줄 아는 용기라 표현하겠다. 이미 죽은 돌들에 게속 돌들을 붙여 나가면, 그 돌들을 살릴 수도 없을 뿐더러, 만에 하나 살렸더라도 바둑도 지게 된다. 작은 돌들은 바둑의 일부분일 뿐이다. 떄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버티기 힘든 상처들은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의 시련과 상처를 버텨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 전체에 놓고 보면, 결국엔 그 상처도 인생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 상처가 내 인생을 갉아먹게 놔둬서는 안된다. 암덩이가 되기 전에 도려내야 한다. 

 

 

오히려 정말 위험한 사람은 도망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전기 자극이 주어졌을 때 도망치기 보단 이 고통이 끝나는 걸 마냥 기다리며 움츠릴 뿐인 실험쥐들처럼 말이다 (공포 기억 실험에서는 쥐에게 전기자극을 주고,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움츠려드는 것'을 공포 반응으로 생각한다). 그런 쥐들은 물에 빠뜨렸을 때, 수영을 해 땅이 닿는 곳으로 가면 살 수 있음에도 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죽기를 기다리며 버틸 뿐이다. 해원이 직장을 그만두고 명여 이모가 있는 호두하우스로 떠난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결정이다. 해원 스스로는 단지 휴식을 위해서, 마음 정리를 위해서 서울을 떠났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상처 주는 세상에서 잠시 멀어진 덕분에, 해원은 다른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여유와 다시 시작할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한적한 시골의 굿나잇 책방을 알게 되고, 굿나잇 책방을 운영하는 옛 동창 은섭을 만나게 되고, 또 그와 사랑할 수 있었다. 책방에서 일하며, 단골손님들과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며 그간의 상처를 치유해 갈 수 있었다. 보영과 화해할 수도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 싼 엄마와 명여 이모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됐다. 내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되었다. 

 

나도 한 때 도망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 실패자라고 스스로를 낙인찍고 괴로워 했었다. 그 때로 돌아가면 더 잘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하는 식의 후회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런 생각은 고통에서 멀찍이 떨어진 후에야 보이는 것들이었다. 당신의 나는 내 당장의 버거운 상처들에 아파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분명히, 계속 버텼다 해도 상황이 좋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도망쳐 나왔기에 보였던 후회들임을 알기에 미련이 남지도 않는다. 한 번씩 좋은 저널에 논문을 내는 동기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해원도 해천으로 잠시 떠난 덕분에, 사람을 사랑하고 다시 미술을 가르칠 힘을 얻을 수 있었듯이, 나 역시 연구를 포기했기에 상처를 회복하고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도망친다는 것', '상처를 극복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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